이곳은 개발을 위한 베타 사이트 입니다.기여내역은 언제든 초기화될 수 있으며, 예기치 못한 오류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.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박정희 정부/평가/긍정적 평가 (문단 편집) === [[녹화사업|산림녹화]] === 이미 구한말부터 모두에게 허용된 무분별한 벌목으로 한국의 산림은 심각하게 훼손된 상태였고, 이후 [[일제강점기|일제의 수탈]]과 [[6.25 전쟁]]을 거친 산림의 파괴와 1950년대 전후 복구사업과 폭발적인 인구 증가세에 따라 막대한 목재가 연료, 건설자제로서 소요되었기에, 한국의 거의 모든 산들은 민둥산으로 변하였다. 이에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후 [[이승만 정부]]부터 식목일을 제정하고, 석탄 사용을 장려하는 등 여러모로 녹화사업에 힘썼지만 근본적인 해결책은 되지 못하였고, 이후 1960년대 초까지 상황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. ||{{{#!wiki style="margin: -5px -10px" [[파일:1903Seoul_suburbs_byHerbertPonting.jpg|width=100%]]}}}|| || 구한말 심각한 산림의 황폐화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진으로, 1903년 서울 무악재 주막과 민둥산 풍경, 소 등에 땔감이 잔뜩 실려있는 것을 볼 수 있다. [* 게다가 저 지점은 시골 벽지도 아닌 산 하나만 넘으면 일국의 [[경복궁|왕궁]]이 나오는 곳에서도 저 정도이니 얼마나 심각했는지 알 수 있다.] || 하지만 박정희 정부 동안 산림청 발족, 화전 정리, 사방사업, 전국적인 연료림 조성, 석탄개발 및 연탄 등 대체임산 연료 보급 등의 기반과 함께 조림사업을 이어갔고 1973년 시작된 제1차 치산녹화계획 동안 행정력을 강력하게 동원하여 대대적인 녹화사업을 추진함으로서, 그 결과로서 한국의 산림을 재건했다. 1984년 임업통계요람[[https://www.forest.go.kr/kfsweb/cop/bbs/selectBoardArticle.do;jsessionid=tja0XHCNJOJHbLRl43dBHmbL5ZhMey0DRELCv5SmcHRmSg29pnD9v67zMwAdM8D6.frswas01_servlet_engine5?nttId=2910092&bbsId=BBSMSTR_1064&pageIndex=4&pageUnit=10&searchtitle=title&searchcont=&searchkey=&searchwriter=&searchdept=&searchWrd=&ctgryLrcls=&ctgryMdcls=&ctgrySmcls=&ntcStartDt=&ntcEndDt=&orgId=&mn=NKFS_04_05_09&component=|#]]에 따르면 한국의 전체 임목면적의 84%가 20년생 이하, 즉 나무 10그루 중 8그루 이상이 박정희 정부의 산림녹화기에 식재되어 활착된 것으로 나타났으며, 오늘날 박정희 정부가 추진한 녹화사업은 전 세계적으로도 굉장히 성공적인 사례로서 손꼽힌다. 1982년 [[유엔식량농업기구]]는 한국은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'''산림녹화에 성공한 유일한 나라'''라고 보고했으며, 60-70년대 동안 한국은 산업화와 동시에 국토녹화까지 함께 동반하는 비약적인 성장을 이루었다. 2020년 산림청의 산림과학원은 국내 산림의 공익적 가치를 연간 221조 원으로 국민 한 사람당 약 428만 원의 혜택을 제공하고 있다고 평가했으며[[https://www.khan.co.kr/article/202004011401001|#]] 2001년 박정희는 일관되게 녹화사업을 추진하여 산림녹화를 이루어낸 공로를 인정받아 국립수목원 숲의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었다.[[https://www.forest.go.kr/kfsweb/kfi/kfs/cms/cmsView.do?mn=NKFS_03_13_03_06_02&cmsId=FC_000179|#]]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